원문 (2012년12월31일자 들소리신문 스크랩):
http://www.deulsor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095


신앙은 나를 폐기처분하고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 재창조의 역사
물량주의 조장하는 번영신학, ‘하나님 나라’를 ‘영생보험’으로 전락
주님 안에서 깊이를 추구하며 거기서 뜨거워지고 감격 회복해야
 .

·대담자:이 성 범 목사( 장유남산교회 담임) / 양 승 록 편집국장(들소리신문)

·장 소:들소리신문 세미나실

 

21세기 한국교회 앞에 놓인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가 지금 교회들의 모습일까. 문제가 있고, 주님의 뜻과 다른 방향에 자리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자문은 오늘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들을 직시하고 있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경남 김해에서 목회하는 이성범 목사(장유남산교회) 역시도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창원에서 대형교회로 불리울 정도로 속칭 ‘부흥’을 이루었으나, 그 현장에서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셨던 본질이 아니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교회를 3개로 분립하여 공동 목회를 시행하다가 2년 만에 그 사역까지도 내려놓고 교회의 원형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개척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영(靈)이 사는 교회, 신(神)이 나는 교회, 쉼(休)이 있는 교회’, ‘무자기(無自己)의 생활, 무기명(無記名)의 헌금, 무계급(無階級)의 사역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공동체를 꿈꾸며 오늘까지 사역하고 있다. 또한 그런 교회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하며,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지역 목회자들과 한 달에 두 번씩 나무(我無)의 정신으로 교제의 모임을 갖고 있다.

인터뷰를 몇 차례 요청했으나 고사하다가 어렵게 수락한 이성범 목사,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이 저를 본질적으로 다루신 게 약 10년 간 자아제거 작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죽음(갈 2:20)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주님은 저에게 집요할 정도로 신앙의 본질적인 그 삶을 구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기 죽음을 확인하고,

 주님과 깊어짐의 본질로 나아가자”

 

△왜 주님은 그렇게 ‘자기 죽음’을 강권적으로 요구하셨던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사람에게 선제돼야 할 것은 오직 ‘자기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는 사람이, 그것도 큰 자가 드러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하고 군림해야 하는 것이 세상나라의 구조이며 속성입니다. 그런데 목회자(성도)들이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본질적인 삶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해있는 문화와 자기와의 충돌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님 안에 있다고 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강화되거나 나의 주장이 강해지는 것은 모순 아니겠습니까. ‘주 안에서(in Christ)’라고 하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변화된 피조물로 옛사람인 내가 없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나라인 새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 됐다는 것은 나를 그대로 두고 주님을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나를 폐기처분하고 그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이전의 나는 미련없이 없어져야 합니다. 이런 정상적인 신앙상태가 되면 그때부터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만족스럽고 불쾌하지도 않습니다. 목회 방향을 비교의식 속에서 성공 지향적으로 할 필요도 없어지고 주어진 그대로, 믿음의 분량과 은사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기독인이 된다는 것은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는 ‘다시 태어남(born again)’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신앙의 여러 단계(학습, 세례, 임직)를 통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왜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변형되고 있는 것일까요.

-“옛사람의 욕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시대의 풍속, 시대의 가치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구조에서 탈출(출세상)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세상으로부터 이끌어내야 하는 역할을 사역자들이 해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질되고 무감각해지고, 타성에 젖어 나중에는 완전히 그 세계 속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성공이나 실적 앞에서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나 부흥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합리화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런 식의 신앙생활은 결국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될수록, 열심일수록 주님보다는 자기가 점점 강화되어져 버립니다. 일종의 신앙 생활의 역기능이고 악순환일 수 있습니다.”


△목사님도 그런 위기가 있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신학교 때부터 복음의 본질에 눈을 뜨고 나름대로 복음적으로 교회를 시작했는데, 사역의 현장에서 외적으로 성장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이 옛사람의 기질대로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자기로 익숙해지는 것은 ‘심각한 위기’입니다. 문제는 어떤 여건이라도 신앙의 본질,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로 부름 받았는지를 성찰하며 지속적인 자기 개혁, 그래서 갱신(Reformation)을 넘어 재창조(Recreation)여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가 아닌 ‘개혁되는 교회’를 원한다면 끊임없는 재창조가 없이는 자기세계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때때로 외롭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주님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그런 여건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환경안배의 은혜이고 그 나라를 세워가시는 그분의 주권적인 섭리와 뜻입니다.”

△외형적으로 교회 성장이 어느 정도 됐을 때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까.

-“짧은 기간에 교회가 성장할수록 위기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또 지역에서 이름있는 교회, 그래서 큰 교회(?)가 될 때 그 정도가 심각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자로 무의식적으로 군림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기란 사람의 기질상 힘들다고 봅니다. 극복하려 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섬겼던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공로와 보상주의 생각으로 당연하게 누리게 됩니다. 그렇게 물들다 보면 우리의 목회토양이 결국은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변질되고 왜곡 되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변질·왜곡은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치유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고,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이 문제만은 일부분의 치유가 아니라 다시 전반적으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치료 할 정도가 아니라 전 존재가 완전히 뒤엎어져서 새롭게 거듭나는 영적 혁명이 아니고서는 정상적인 회복은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끝났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재를 덮어쓰고 그저 하나님의 일하심만을 잠잠히 침묵하면서 기다릴 때라고 봅니다.
다만 이런 의식과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감대를 이루면서, 힘들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그루터기처럼 뜻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는 것, 이런 삶이 오늘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야 할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사의 ‘그루터기’들을 보면서 ‘내가 잘못된 게 아니구나’라고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다수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 갖기가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 길이 아니라며,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서 요령주의, 적당주의, 타협주의 세속문화에 휩쓸리다 보면 복음의 유일성과 명료함에서 멀어져 가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의 목회 현실 속에서 어느 누구를 바라보거나 비교하지 말고 주님 앞에 단독자로 살아가는 고독한 순례자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 자기 부인이고 주님을 따르는 좁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것을 말하게 되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골적으로는 거부하지 않지만 은근히 거부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신이 되고 있는 성장주의나 기복신앙의 논리로서는 그 나라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분별한 물량주의와 세속주의를 조장하는 영웅신화와 번영신학의 시대 정신에 현혹된 신앙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죽음 이후를 위한 ‘영생보험’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지금의 성장주의나 번영신학의 오염이 목회 현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합니다. ‘다른 복음’의 방식으로 목회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당연시 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 이 시대의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보다 물질을 중요시하는 맘몬이즘, 그것에 편승한 강단 메시지의 내용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오늘날의 물량주의 중심의 집요한 공세로 복음을 변질시키고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것을 진리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 살아 보세’에 편승하여 교회성장과 축복을 당연시하는 풍조도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될 문제입니다. 세상은, 그리고 다수의 신자들은 그런 말을 선호하고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정신인 성장주의, 물량주의를 과감하게 저항하며 외면하지 않는 한 우리의 신앙은 세속화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알고 지금이라도 한국교회가 대오각성의 뼈∼저린(아주 힘을 주어 말한다) 내려놓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초대교회가 말하는 교회의 원형을 찾아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4∼5년 어간에 신천지 때문에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원인을 들여다보면 성경의 핵심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방법이 나와야 하는데 배타적인 모습 일변도인 것 같습니다.

-“신천지가 설치는 것은 한국교회에게도 간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졌다면 신천지가 이렇게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신천지에 넘어간다는 것은 교회가 성경을 제대로 풀어내 가르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원인이 파악됐다면 지금부터라도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당 입구에 ‘신천지 출입금지’라고 붙이는 것으로 이단 대책을 세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 우리들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 정도의 신자가 되려면 목회자들과 동역관계라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교회 성도들은 성숙 보다는 여전히 유아기적인 모습이 많습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과잉보호하고 있는 면이 적지 않음을 느낍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듯 생명을 양육하는 차원이 아닌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차원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교회의 본질을 부여잡고 살아내도록 하기 보다는 조직(?)에서 의도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말 잘 듣도록 길들여지는 면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성도와 목회자의 지체 관계를 분리해서 다른 계급적, 수직적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해 버리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게 아니라 하나의 조직단체나 수용시설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교인은 그 조직의 멤버는 될지언정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데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적하신 대로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교회의 지체들이라는 의식이 약하니 내 교회만이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의식은 점점 더 희박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모임을 갖고 있는 ‘나무(我無) 모임’은 교단이 다른 목회자들이 본질적인 부분을 아무 스스럼없이 나누며, 고민을 풀어내어 서로 하나님의 지체의식을 키워갈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은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숫자는 적지만 지체의식은 강한 것 같습니다. 그 모임을 만들기 위한 특별한 목적도 없었는데, 주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서 목회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 모임을 통해 서로 비교하거나 한 사람이 자기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소통, 교제, 나눔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는 모임을 통해서 그때그때 받는 위로가 있다는 고백들을 자주 합니다. 이 모임에서는 신앙의 본질과, 목회와 교회의 본질을 주로 많이 이야기 합니다.”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려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외로운 길을 당당히 걸을 수 있을까요.

-“밖으로부터의 인정이나 위로를 기대하지 말고 주님과의 개인적 영성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의 높이를 추구하려 하지 말고 주님 안의 깊이를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돈독히 하여 거기서 보화를 캐내어, 거기서 뜨거워지고 감격스러워진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묵상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수단이 되겠고, 그것의 종착점은 그분과의 깊어짐, 그분의 임재로부터 오는 충만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방법이 아닌 방향이기에 좀 더 치열하게 그 방향 잡기를 위해 몸부림쳐야 할 것입니다. 그 방향을 통하여 내면이 풍족해지면 외롭지도 않고, 대부분의 경우 환경이나 조건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일 중심에서 벗어나 외로움과 존재의 어두움을 견디어야 합니다. 햇빛만 보려 하면 안 됩니다. 가급적이면 조명 받는 자리는 피해야 합니다. 깊어짐의 통로인 이 어두움은 필수적입니다. 그 어두움은 자아를 벗어내면서 겪게 되는 ‘존재의 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존재의 밤에서는 고요함과 잠잠해짐 뿐입니다. 자기를 벗어내는 존재의 밤이 지나면 비로소 주님의 채워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 내에 여러 암울한 일들이 많아도, 그래도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해야 할 터인데요. 희망의 메시지 한 마디 들려주십시오.

-“이 새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철저히 인식하고, 이런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긍정의 힘이나 희망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버리고, 아플 때는 아파야 하고, 맞을 때는 맞아야 합니다. 그렇게 정직하게 우리 자신들을 들여다보고 인식해야 그때 비로소 재를 무릅쓰고 회개의 자리로 나갈 수 있고, 너무 들떠서 자아도취에 빠졌음을 고백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암울한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의도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겸손히 낮아질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많아진다면 그때 비로소 ‘교회가 희망이다’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우리의 주님께서는 기어이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셨듯이.”


장유남산교회가 지향하는 ‘바로 그 교회’

☞ 우리는 성경에서 보여 낸 바로 그 교회로 세워지기 위하여 ‘자아실현’을 위한 자기 열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변화’를 이루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단순한 신앙생활을 지향합니다.


☞ 우리는 세상나라의 가치관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사람들의 명성보다는 하나님 백성의 영성을,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내면세계의 성숙을, 벽돌교회의 흥왕보다는 ‘심령교회’의 부흥을 위해 날마다 자기부인의 삶을 추구합니다.

 

☞교파난립과 개교회의 경쟁적인 성장주의로 바알신당화 되어가는 교회 세속화 시대에서 하나님과 성경을 교회 성장의 수단이 아닌 신앙의 목적으로 삼아 ‘온전한 사람’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