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진화론의 잘못?
진화론(진화과학)에 대해서 전문성이 별로 없는 분들이 모여서 유신진화론의 잘못을 논했나 봅니다.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왜곡된 내용들이 개신교 교회의 미래를 망치는 주범이 아닐까 싶습니다.
- 유신적 진화론? 그런게 있음?
영어로는 theistic evolu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진화론이면 진화론이지 유신적 진화론 혹은 무신론 진화론, 그런게 어디에 있습니까? 네 과학적 용어로는 틀린 말입니다. 유신적 상대론, 무신적 상대론이 없듯이, 그리고 유신적 양자론, 무신적 양자론이 없듯이 과학에는 유신적 진화론도 없습니다. 과학적으로는 그냥 진화론입니다.
- 유신적 진화론. 응 그런게 있음.
하지만 과학만이 인간의 탐구방법인 건 아닙니다. 과학으로 판단할 수 없는 혹은 과학의 범주가 아닌 영역에서도 지적인 탐구가 당연히 존재합니다.
가령, 도덕적 판단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핵무기 만드는 공학을 핵무기공학이라고 합시다. 핵무기공학은 도덕적인가요, 비도덕적인가요? 핵무기공학 자체는 그냥 과학입니다. 핵융합이나 핵분열 원리 자체가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핵무기공학에 대해 과학 외적 범주에서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를 따질 수 있습니다.
진화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용어로는 진화론(혹은 진화과학)이지만 그에 대한 종교적 혹은 철학적 해석으로 유신적 진화 혹은 무신론 진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즉, 진화가 신의 창조방법이라고 보는 입장은 진화를 유신적 진화로, 반대로 진화는 신없이 자연 스스로 작동한 결과라고 보는 입장은 무신론 진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역사적 배경이 있는 거임.
그러니 유신적 진화 thestic evolution은 과학이 밝힌 진화를 종교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마찬가지로 상대론과 양자론도 신의 활동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대론과 양자론 앞에 ‘유신적’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상대론이나 양자론이나 기독교 신앙과 대척점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역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진화론은 소위 창조-진화 논쟁의 100여년의 역사를 통해 창조의 반대말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풀어내기 위해 진화를 신의 창조로 이해한 유신적 진화라는 표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무신론 진화라는 말도 생겨났지요. 진화에 관련된 과학은 수용하지만 진화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입장이 다른 두 견해를 그래서 유신적 진화, 무신론 진화라고 부를 뿐입니다.
- 뿅 창조만 창조? 그럼 당신은 창조되었슴?
진화과학에 관해 전문성이 없는 분들이 유신 진화를 비판하지만 그들의 동기는 이해할 만합니다. 그 동기는 바로 그들의 신학에서 나옵니다.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학말입니다.
그들은 진화가 창조의 방법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변형시키는 방법(그러니까 진화)은 기독교의 창조 개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창조개념은 아직도 고대와 중세에 갇혀있습니다. 그 주장이 맞다면 무에서 유로의 창조만이 창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빅뱅이 시공간의 시작이고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창조점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빅뱅만이 창조일 뿐입니다. 빅뱅 이후에 만들어지는 우주의 거대구조, 은하와 별, 블랙홀, 태양, 행성계. 지구, 달, 바다, 식물, 동물, 인간 등 그 무엇도 창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빅뱅 이후 자연법칙을 따라 하나하나 형성되는 것들이니까요. 질량보존의 법칙을 따르면서 말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뿅하고 무에서 유로 창조해야 만 창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빅뱅 이후 생겨난 다양한 창조물들은 죄다 창조물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했습니까? 그럴리가요. 엄마 아빠로부터 온 난자, 정가가 수정되어 단세포에서 부터 세포분열을 일으키고 엄마가 섭취한 영양분들이 탯줄을 통해 공급되면서 열달이 지나면 아기로 태어난 것이니까요.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당신을 뿅 창조로 무에서 유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은.
- 계속적 창조
하나님이 창조한 대부분의 창조물들은 그런 뿅창조가 아니었습니다. 질량과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지켜지는 우주에서 시간에 따라 자연법칙이 작동하면서 새로운 형태가 나오고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걸 과학자들은 진화라고 부릅니다. 우주의 진화, 별의 진화, 행성계의 진화, 생물의 진화, 인간의 진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진화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이해합니다. 중력을 사용하여 천체의 운동을 만들고 사계절을 만들어 섭리하듯이 진화를 사용하여 창조하신다고 그렇게 믿습니다.
그걸 계속적 창조라고 합니다. 중세 이후에 더 발전된 창조의 개념입니다. 창조는 과거의 한 시점에 끝난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누가 계속적 창조를 부정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지구도 우주도 다 6천년 전에 한 주간 동안 창조된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옛날에는 창조와 섭리를 나누어서 설명했습니다. 뿅 창조와 그 이후의 섭리로 나누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창조는 과거의 한 시점에 끝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동안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은하들은 대략 일년에 하나씩 별을 만듭니다. 그 별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닐까요? 지금도 태어나는 아기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될 수 없을까요?
- 무에서 유로의 창조만이 창조이고, 존재하는 물질들의 변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기독교의 창조개념이 아니라는 주장은 매우 잘못된 개념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에만 집착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을 들어 창조세계를 보시기 바랍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지켜지는 우주에서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속적 창조는 기독교의 3가지 창조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걸 버려야 더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을 뿅 창조론자라고 부릅니다.
- 사실 이들이 붙들고 있는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도 중대한 오류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비물질에서 물질로의 창조가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의 신개념에 영향을 받아 신을 물질의 원인으로 설명하던 철학적 논증에 깊이 영향을 받은 개념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제1원인을 찾는 철학적 논증에 따라 결국 모든 만물의 원인으로서 신을 논했던 그 흐름말입니다.
- 하지만 창세기 1장은 그런식의 무에서 유로의 창조 개념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구약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창세기 1장 3절에서 빛을 창조하기 전에 이미 2절을 보면 물이 존재합니다. 흑암과 어둠이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합니다. 수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력이 존재하여 물이 아래로 모이고 물 위로 공기층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구도 존재하고 대기도 존재하고 물도 존재하는 듯한 그림을 창세기 1장 2절이 던져 줍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창세기 1장은 비물질에서 물질로의 창조가 아니라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창조를 이야기합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비물질에서 물질을 만들어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신학적 의미입니다. 더 풀어내면 창조물이 창조주에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창조물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창조주에 대한 의존성을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은 긴 논의가 필요하니 긴 글이 필요합니다)
- 그러니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만 붙들고 계속적 창조의 개념을 놓쳐버린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신학적으로 매우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무로부터의 창조를 비물질에서 물질을 만들어냈다는 좁은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에 성서신학적으로도 매우 불완전 합니다.
- 이분들은 종종 유신진화론이 진화론보다 더 나쁘다고 비판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언제 이 분들이 그 좁은 창조의 개념을 벗어날 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좀 눈을 감지 말고 창조세계를 보기 바랍니다. 우주의 진화와 지구의 진화와 생물의 진화를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우주를 이렇게 멋드러지게 창조해 온 그 하나님께 이분들은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그렇게 강경하게 주장하는 이분들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요?
<우종학 /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